사이비역사학의 등장 배경은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5.11일 박정희 정부는 교육의 국적을 찾자는 제창에 따라 국사교육강화위원회를 두고 민족 중심의 역사교육을 실시한다. 이 때 등장한 사람이 안호상으로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단군과 고조선에 깊은 관심
Ⅰ. 한국고대국가
우리의 고대사를 돌아보면 중국이나 일본을 위시한 아시아 지역이나 중남미, 그리고 유럽지역에 비해 문화유산이 위축될 만큼 적다. 우리나라에는 전쟁이나 난리가 많았던 만큼 고대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을 수 없기도 했다. 그런데, 실상을 찾아보면 본래부터 많이 만들어지지
Ⅰ. 서론(序論)
근대역사학이란 보편타당성을 강조한 과학적 역사와 독립적인 학문으로 정착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경사일체(經史一體)의 중세사학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학문적 독자성을 찾아야 하며 나아가 역사의 주제가 정치중심에서부터 사회경제문화 등 사회전반의 문제로 확대되면서 ‘인
Ⅰ. 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계엄령
1. 일제의 '계엄령'은 천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1882년 8월 5일에 제정된 일제의 '계엄령'은 천황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계엄의 근거는 “천황은 계엄을 선고한다”라는 내용의 대일본제국헌법 제14조였으며, 계엄의 요건의 존부는 “계엄을 선고
Ⅰ. 개요
1910년 병합 이후, 식민지조선을 대상으로 표방된 동화주의는 한편에서의 무단권력과 함께 식미지조선인에게 일선동화에 대한 동의를 유도해 내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동화정책을 표방하면서 일제는 이론적 근거 중의 하나로 일선동조론을 내세우고 있다. 일선동조론은 일본의 근대사학연
Ⅰ. 일제(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내선일체론
일제하에서 시기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식민지 통치의 목표는 동화주의의 완성에 있었다. 일제는 그간 동화주의의 다른 표현으로 일시동인, 내선융화 등의 용어로 식민지 차별을 무마해 왔다. 그나마 우가끼(宇垣一成) 총독이 부임하면서 내건 내지
Ⅰ. 서론
ⅰ. 반식민사학의 등장배경
1910년 을사조약 이후 조선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된 일본은 다양한 측면에서 그들의 한반도 강점을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을 보인다. 그 중 역사학적 측면에서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나타난 것이 식민사학의 정립이였다. 이는 타율성론, 반도적 성격론, 정체성
역사학자들은 이런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과학적 분석 과정을 통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렇게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재구성된 역사를 ‘과학적인 역사’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이 엄밀하게 과학적 분석을 통하여 역사를 재구성한다고 해도 그들도 자
서론
현대 국가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 아니 그 어떤 전쟁 보다 치열하고 격렬한 전쟁을 치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 전쟁이다. 이 역사 전쟁은 수백 년을 이어 왔고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역사’란 곧 그 나라의 정통성이고,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실증주의자들이 모인 단체였다. 진단학회가 조선인이 주축이 되어 만든 최초의 학술 단체라는 점과 실증을 우선시함으로서 학문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세련성을 기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진단학회가 학술사적으로 가지는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그